[소설] 홀리가든 (7.0점)

from [생각]/책 2008/03/21 10:30
홀리 가든 - 에쿠니 가오리 / 7.0점(10점만점) / 그녀들은 스스로 외톨이가 된다.


'차가운 밤에'를 읽고 씁쓸하게 책을 덮었던게
몇 일전인데 에쿠니가 다시 한 번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홀리가든'은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
3,4년간 날 실망시키던 에쿠니 가오리가, 딱히 이유는 없지만
이 책에선 날 기쁘게 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예쁜 하늘색 바탕에 하얀 찻잔이 그려져있는 나른함이 가득 묻어나오는 표지는
따뜻한 봄날에 어디 작은 카페라도 가서 홍차를 한 잔 마시면서 읽어야만 할 것 같다.
또는 잘정돈된 주방이나.

그러나 이 예쁜 표지의 책은 지루했다. 전혀 집중이 안됐다.
에쿠니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별다른 사건없이 늘어놓길 좋아하는 작가다.
재미있게 일상을 늘어놓는 이 작가를 좋아했다.
이 책을 쓸 무렵의 에쿠니 가오리는 조금 슬럼프에 빠져 있었을까?
머릿속에서 술술술 나오는 이야기를 적은게 아니라 억지로 쥐어짜내서 겨우겨우 완성했다는 느낌이다.
 
주인공은 어릴때부터 친구로 지내온 가호와 시즈에.
가호를 사랑하고 있는 직장동료 나카노.
시즈에의 연인 세리자와.

가호와 나카노는 기묘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묘함은 물론 가호가 만들어낸것이다.
가호는 무심하다. 과거의 남자를 잊지도 못하고 다른 남자와 자고 돌아다니고
나카노가 집에 놀러오면 함께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같은 침대에서 자기까지(정말 자기만) 한다.
그러면서 시즈에에게

"정신적인 친구들이 그렇게 많다는거, 좀 음란하지 않니. 나는 이해가 안 된다.
그거에 비하면 자는 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지."

가호에겐 남자와 자는건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카노같은 친구가 문제지.

시즈에가 사랑하는 세리자와는 연상으로 유부남이다.
에쿠니 가오리는 유부남과의 연애에 대해 할 말이 많은가 보다.

이 연애는 비정상적(사실 요즘 불륜은 잔뜩 널려있어서 비정상이란 말이 어색하다.)이지만
오히려 가호보다는 정상적으로 보인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서 즐거운 연애를 한다. 같이 밥을 먹고 수영을 하고 전시회를 구경하고.

가호와 시즈에는 외로운건 싫다고 말하면서 혼자 있게 되기를 원한다.
갸르릉 거리는 고양이 정도는 그 외로움에 동참시킬 생각이 있어보이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의 영역에 침범하는 일을 극도로 싫어한다.

두 사람은 진심을 가리기 위해 종이로 몇 겹정도 둘둘 말려있는 것 같다.
간혹 진심을 내비치기도 하지만 정말 가끔이다.

태안기름유출 사고 때문에 기름범벅이 된 바다에
하얗게 떠있던 흡착포가 생각났다.

언제까지고 새카만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흡착포 같은 가호와 시즈에를
바다에서 건져내주고 싶었다.
망으로 사뿐하게 건져내서 바닷물과 기름을 쭉 짜내고

"자 이제 너희들도 제대로된 연애를 좀 하란말야. 혼자서 바다에 떠다니지 말고." 라고 말해줄테다.

책을 읽기 시작했을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감기로 고생하고 있는 나는
가호나 시즈에가 했던 것 처럼
가만히 유리창에 이마를 대보았다. 서늘해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정말 멀리까지 왔다고 생각하고, 정말 외톨이라 생각하고,
그래도 세수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가호는 수도꼭지를 틀었다.
그렇다, 아무리 그래도 세수는 해야 하고, 아무리 그래도 이는 닦아야 하고,
아무리 그래도 아침은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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